채권시장은 지금 투매중이다. ‘사자’는 없고, 오로지 ‘팔자’ 뿐이다. 흥분한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금융당국이 연일 대책을 내놓았지만, 투매심리는 가라앉지 않고 채권 값도 연일 폭락(채권금리 상승)하고 있다.

지난 주 후반부터 다시 뜀박질하기 시작한 장기금리(3년만기 국고채 유통수익률)는 25일 마침내 연 4%대에 진입했다. 콜금리 인하가 시작된 작년 8월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지난해 말엔 콜금리(3.25%) 아래로 떨어지더니 이젠 콜금리보다 무려 80bp(1bp=0.01%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정상적인 장·단기금리 격차가 40bp정도임을 감안하면, 채권시장은 몇 달 만에 극에서 극으로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금리상승은 향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의 반영이다. 하지만 지금의 금리폭등은 경기요인 보다는 금융당국의 미숙한 시장정책과 이성을 잃은 시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금리상승에 처음 불을 지핀 것은 정부다. 새해 시작과 함께 1월중에만 10년물 3조원을 포함해 8조원이 넘는 국채발행계획을 내놓자 장기금리는 순식간에 10bp이상 치솟았다.

채권물량이 한꺼번에 늘어난다는 소식에 채권 값이 뚝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1월 금융통화위원회(13일)가 끝난 후 박 승 한국은행총재가 콜금리 인하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자 그렇지 않아도 수급불균형으로 상승압력을 받고 있던 장기금리는 기대심리까지 가세, 오름세에 더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현재로선 채권시장 불안을 잠재울 별다른 약효가 없어 보인다. 24일 재정경제부가 “2월 국채발행물량을 5조원 이하 줄이겠다”고 밝혔고, 한은도 이례적으로 시장에 풀려있는 채권 1조원 어치를 사들이는 등 금융당국이 강도 높은 채권물량조절에 나서고 있지만 금리 오름세는 잡지 못했다.

재경부는 2월 금통위에서 콜금리를 내리면 장기금리 폭등세도 한풀 꺾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장기금리 안정만을 위해 한은이 콜금리 인하카드를 뽑을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채권시장이 작년 하반기 ‘묻지마 사자’ 일색이었다면, 지금은 ‘묻지마 팔자’분위기다. 이날 실시된 한은의 통안증권 1조5,000억원 어치 입찰에 고작 3,300억원만 응찰, 좀처럼 보기 드문 미달사태가 빚어진 것이 단적인 예다. 주식시장 활황으로 채권투자매력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여, 은행이나 투신권의 채권매도 행렬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한 채권분석가는 “그동안 장기금리가 너무 내려 간데다 경기개선 신호도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오르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하지만 시장이 너무 한 방향으로만 몰려가고 있고 정부도 미숙한 수급대책으로 혼란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