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공정거래 당국 등이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고쳐야할 '잘못된 관행'으로 보고 과세와 처벌 등을 강화하려 하자 재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주요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코너에 몰릴 수 있다고 보고 내부거래 줄이기에 적극 동참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17일 물류·광고 부문에서 6천억원대의 내부거래 물량을 중소기업 등 비계열사로 넘기기로 함으로써 다른 대기업들에 미칠 여파가 주목된다.

삼성, SK, LG 등 5대 그룹에 포함되는 대기업들이 이미 작년부터 시스템통합(SI)·광고·건설·물류 업종 분야의 일감을 계열사 몫에서 비계열사 몫으로 발 빠르게 돌렸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러한 업종을 영위하는 계열사들은 총수 지분이 대체로 높은 편이다.

여타 대기업들도 '일감 몰아주기 = 부당 내부거래'가 공식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경쟁입찰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마지못해' 밝히고 있으나 획일적인 규제를 적용하지 말고 업종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항변도 나온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를 웃도는 계열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GS그룹은 계열사별 상황에 맞게 경쟁입찰의 확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 분석기관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GS는 30대 그룹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는 넘는 계열사가 20곳으로 가장 많다.

GS는 내부거래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고자 2011년 4월부터 계열사별로 사외이사를 위원으로 한 내부거래위원회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효성그룹도 "향후 정부 방침에 따라 개선할 점이 있으면 하겠다"며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효성은 그러나 "계열사 수와 비교하면 내부거래 비중이 작고 금액도 미미한 수준이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효성은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 넘는 계열사가 11개다.

한진그룹은 부동산 관리업체인 정석기업과 SI 기업인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 등 3곳이 계열사간 내부 거래에 대해 "비중을 줄이려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진은 지난달 경제민주화에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순환출자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발표했다.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중 내부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STX[011810]는 수직 계열화된 구조이기 때문에 부당 거래 논란에서 벗어난다는 입장이다.

STX 관계자는 "엔진회사에서 출발해 사업적 필요성에 따라 조선사와 해운사를 차례로 인수하고 건설사를 분사한 상황에서 내부거래 비중은 불가피하게 높을 수 밖에 없다"며 "이런 구조상 STX는 논외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8월 공정위 발표에서 4대 그룹 다음으로 내부거래 규모(14조9천억원)가 큰 것으로 지적된 포스코는 광고·설비발주 내부거래를 줄이려고 지난해 광고대행계열사 포레카의 매각을 추진했다.

또 제철플랜트 공사를 계열사인 포스코건설에 수의계약으로 맡기지 않고 경쟁입찰로 돌렸다.

포스코와 26개 계열사 사장단은 공정거래준수 서약식을 하는 한편 발주심의위원회 심의 대상을 1천억원 이상에서 50억원 이상 모든 거래로 확대했다.

한화그룹은 총수가 부재한 가운데 경영에 차질을 빚고 있어 내부거래 축소 방안은 논의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물류,SI,광고,건설 등에서 경쟁입찰을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 등에 따르면 내부거래 비중이 30% 이상인 대기업 중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를 넘는 곳은 120곳이다.

2011년말 기준 총수가 있는 대기업중 상위 10개 그룹의 내부거래 금액은 139조원으로 전년보다 30조원이 늘었고, 내부거래 비중은 14.5%로 전년의 13.2%보다 1.3%포인트 증가했다.

그룹별 내부거래 금액은 삼성(35조원), SK(34조원), 현대차(32조원), LG(15조원), 포스코(14조9천억원) 수준이다.

이들 상위 그룹의 내부거래 금액 합계는 132조원으로 46개 대기업집단의 70.9%를 차지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의 핵심 쟁점은 재벌 2∼3세에 부당이득을 안겨줌으로써 부를 편법으로 이전하는 것"이라면서 "규제의 목표와 대상을 정확히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경제본부장은 18일 "편법 상속이나 골목 상권 침해가 아닌 정상적인 기업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부거래는 상속세 및 증여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SI업계 종사자들은 업종상 내부거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