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중함이 배어있는 조용조용한 말투와 요란스럽지 않은 동선.
김덕중 국세청장 내정자(사진)는 겉으로 보면 매우 ‘정(靜)’적인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업무 측면에서 바라본 김덕중은 전혀 다른 인물이 된다. 대단한 열정과 추진력을 겸비한 실무형 국세공무원. 국세행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소통’을 매우 중시하는 스타일로 직원들과는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문제해결 방안을 찾아낸다. 이로 인해 그는 ‘덕장(德將)’형 리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경거망동을 하지 않고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스타일.
1959년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고를 졸업했다. 대학입학을 앞두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지면서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중앙대(경제학과)로 진로를 잡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뒤 행정고시 27회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마산세무서와 해운대세무서를 거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조세정책과로 파견근무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국세청으로 복귀해 본청 주요 사무관급 보직에 근무하다 서기관으로 승진, 고향 인근인 천안세무서장으로 초임서장 시절을 보냈다.
국세청 정보개발2담당관, 국세청 전산조사과장 등 전산분야에도 몸담았다. 이 시절 국세청 홈택스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여러 민원을 종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진두지휘했다.
청와대 파견 근무를 다녀온 이후 국세청 부동산거래관리과장과 서울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으로 일했다.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한 이후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과 조사1국장 등 요직을 섭렵했으며 2008년 12월 행정고시 동기 및 선배들을 제치고 대전국세청장에 임명되는 ‘파격인사’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외부(청와대)의 힘에 의한 조직개편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국세청은 자발적인 조직개편 모델을 도출하기 위해 대전국세청을 조직개편 시범기관으로 선정, 김 내정자를 적임자로 골라 효과적인 조직개편 모델을 만들어보라는 임무를 준 것이다.
이듬해 7월 백용호 전 국세청장 취임 이후 기획조정관으로 발탁되면서 백 국세청장이 추진한 부분
적인 조직개편을 포함해 국세청 변화방안 마련에 깊숙이 관여하며 현재 국세청의 기반을 만들어 놓는데 일조했다.
특히 백 전 국세청장이 제시한, 아이디어 차원에 불과했던 ‘숨은 세원 양성화’ 등을 현실화 하는데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 아울러 국세청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감사관, 납세자보호관, 전산정보관리관 직위를 개방,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방안 등을 적극 추진한 것도 김 내정자의 작품이다.
‘겸손’이 몸에 밴 관리자로 항상 모든 공과를 고생한 직원들에게 돌리는 스타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겸손이 지나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 많은 후배 국세공무원들이 ‘롤모델’로 꼽는 인물이기도 하다.
학사장교로 군에 입대 전방(28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당시 소대장을 하며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섞여 있는 집단을 유연하게 리드하는 방법을 체득했다고.
매일 아침 국선도를 하며 심신을 수련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주변 직원들에게도 건강을 위해 국선도를 추천할 정도의 국선도 예찬론자다.
부인 황귀자씨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고 기획조정관으로 근무하던 지난 2010년 업무성과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약력]
▲1959년 ▲대전 ▲대전고-중앙대 경제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시27회▲마산세무서 과장, 해운대세무서 과장, 재경부 조세정책과, 국세청 소득세과, 천안서장, 미국뉴욕 주정부 파견, 국세청 정보개발2담당관, 국세청 전산조사과장, 청와대 파견, 국세청 부동산거래관리과장, 서울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 대전국세청장, 국세청 기획조정관, 중부지방국세청장, 국세청장(내정).
세무사신문 제600호(2013.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