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시민단체와의 연대가능성을 타진해 볼 요량 으로 우리 업무와 관계 있는 어느 단체를 방문한 자리에 서 나는 대표자라는 사람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은 일이 있다.
“세무사들은 모두 잘 살고, 돈벌이도 좋다던데요? ……” 황당한 질문에 무어라 대답할 바를 몰라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붙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요즘 자격사 단체들이 모두 나서서 직역쟁탈전을 벌 이고 있는데 유독 세무사쪽만이 조용한 걸 보면 항간의 그런 소문이 사실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러한 질문을 애매한 코웃음으로 적당히 받아넘길 사 람도 있을지 모르나, 내우외환의 역경 속에서 어렵게 버티어가고 있는 많은 회원들에게는 정말 분통이 터지는 평판이 아닐 수가 없었다. 우리 업계 미증유의 위기 지난 여름 의약분쟁과정에서 드러난 의사와 약사들의 목숨을 건 직역쟁탈전을 우리는 눈이 무르도록 지켜 보 았는데도, 그것이 조만간 우리에게 닥쳐올 폭풍임을 실 감한 회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정말 부유하고 배불러서 자기의 직역 따위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업무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아직도 뼈저리게 체험하지 못한 탓으로 그렇게 방관만 하여 온 것일까? 현대사회를 떠 받치고 있는 경쟁의 원리가 아무리 좋은 대안이라 해도 요즘 우리 사회가 각 분야에서 벌어지 고 있는 싸움판은 정도를 벗어나 범죄적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각 단체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위적 대책을 수립하기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는 개혁의 이름으로 경쟁을 해치는 제도와 규제를 모두 철폐하였으며, 회계시장의 개방, 값싼 인터넷 회계 프로그램의 확산, 거기에 유사단체의 조직적 침해공작과 유사자격증의 남발 등으로 우리 업계는 분명 미증유의 혼 란과 위기에 처해 있다.
세무사제도의 사회적 인식이 소원했던 초창기에는 경쟁 도 없었고 직역침해의 위험도 없었다.
법률이 보장하는 울타리 속에 편히 앉아 굴러 들어오는 업무만으로도 만족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우리는 전문 자격사에게 요구되는 당당한 모습과 결집된 우리의 역량을 바탕으로 과세당국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모색하여야 하며, 우리의 업무영역을 스스로 지킨다는 결연한 의지로 새 롭게 무장하여야 한다. 회비를 걷어서 조직의 재정을 튼튼히 하고 회원의 비리와 부정을 조사 단속하여 업무질서를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업무영역을 외부의 침해로부터 보호하고 지키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감시업무는 정화업무와 달라 그동안 우리 직역의 외부적 침해행위에 대한 감시기구의 설치문제가 더러 논의된 적이 있었으나 업무정화조사위원회 의 업무와 중복된다는 의견에 밀려 채택되지 못하였다고 전 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낭패는 업무정화조사위원회의 법적 성격에 대한 이해부족과 당시의 낙관적인 업무환경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세무사의 업무정화문제와 이에 따르는 조사문제는 우리의 업무질서 확립과 업무환경의 개선을 위하여 제기되는 내부적 문제이며, 따라서 이에 관한 조사는 회원에 대한 징계권의 행사를 목적으로 하는 내부적 활동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무사업무의 외부적 침해행위는 형사처벌을 받는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고, 이에 관한 활동은 형사법에 대한 범죄사실을 감시 조사하고 범죄구성요건을 검토하여 사직당 국에 고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그 성질이 전혀 다르다.
이와 같은 감시활동의 특성과 업무환경의 변화를 감안할 때 독립한 감시기구를 설치하는 문제는 필연적 귀결이며, 또한 이러한 기구의 설치는 우리의 자위의지를 과시하는 대 외적 경고수단이 될 것이므로 이에 상응하는 침해예방효과 도 반드시 따를 것으로 본다. 전면전으로 돌입한 직역싸움 그동안 생계형 무자격자들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침식당해 온 우리의 업무영역이 이제는 관권을 등에 업은 이익집단과 유사자격사들에 의하여 조직적인 침공을 당하고 있으니 바야 흐로 직역쟁탈전은 국지전에서 전면전으로 돌입한 상황이다. 법률에 의하여 보장된 우리의 업무영역이 이토록 무주공산 으로 변해 가는데 우리의 대응은 과연 어떠했는가?
무자격자들의 기장대리행위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고발은 커녕 그들과 제휴하여 수입을 올리기에 급급하였고, 심지어 명백한 세무대리행위인“부동산양도신고업무”를 법 무사, 중개사 등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항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넘어갔으니, 삭발한 머리에 붉은 띠를 동여매고 뙤약볕 아래 주저앉아 절규하던 의사와 약사들의 결연한 모습이 우리에게는 꿈만 같이 느껴진다. 명색이 세무에 관한 전문가임을 자처하면서도 세무대리의 개념과 정의 하나 제대로 정비하여 제시하지 못하고 뭇 사람 에게 놀림을 당해 왔으니,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누가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수 있단 말인가? 세무사가 들고 온 부동산양도신고서에 위임장을 첨부시키 라고 지시한 그 때 그 분은 요즘 사무실 운영이 잘 되는지 문안이라도 한번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무릇 전문자격사의 직역은 내부적 충실과 외부적 방어활동 에 의하여 유지될 수 있는 것이며, 법률로 보호되는 제도적 장치도 당해 단체의 자위적 노력에 의해서만 그 실효를 거둘 수가 있는 것이다. 세무사법과 변호사법이 규정하고 있는 직역침해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같은 입법형식을 취하고 있는데도, 변호사법 위 반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이미 일반화되어 있고 위반자에 대한 처벌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우리는 아직까지 도 세무사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세무사제도가 발달한 일본의 경우, 이미 20여년 전에 “업 무침해감시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연합회 회장이 위원장 자 리에 앉아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국내의 자격사 단체들도 모 두 유사한 기구를 설치하여 직역수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전회원이 파수꾼 되어야 그러나 업무침해행위를 감시하고 적발하여 고발한다는 것은 정말 귀찮고 괴로운 일이며, 침해자의 원한을 사게 될 이러한 일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남의 일처럼 방관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치안부재의 상태에서 일어선 자율방범대가 큰 역 할을 해내듯이, 우리도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하여 전회원은 지금부터 파수꾼의 역할을 떠맡아야만 한다. 아무도 대신 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스스로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갈고 닦은 보람이 있어 우리들 세무사의 사회적 위상은 괄목할 만큼 향상되었고,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선호하 는 직종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우리는 지금 중 대한 결단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희망찬 우리의 터전을 가꾸고 지켜셔 고스란히 물려주는 훌륭한 선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물려 받은 터전에서 열매만 을 따먹고 사라지는 못난 선배가 될 것인가를 선택하라고……
제 323호 (2001. 8. 1)